컬럼


인공지능 시대에 성공하려면 재즈연주가의 DNA를 이식받아야 하는 이유?



이 시대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표현이 있다면 바로 '불확실성의 시대' 라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상황 역시 이런 전염병이 등장할 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으며 선진국이라 여겼던

구미서구권 나라들이 이렇게 무너질 것도 상상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더욱 불확실합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막상 행동하려고 해도 엄두도 잘 안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전의 시대에 통용되었던 사고방식이나 행동패턴에서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세상에 먹힐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거든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전 시대는 '확실'과 '안정' 을 추구하던 시대였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정은 악의 요소이고 실패의 요소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불확실성과 불안정은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여기에 바로 재즈연주가가 구원투수로 등장합니다.


재즈연주가는 무대에 올라갈 때 앞으로 어떤 연주를 하게 될지 불확실하고 불안정합니다.

함께 연주하는 파트너의 연주에 따라서, 그 날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 또 나의 기분에 따라서

연주가 시시각각 변하는 즉흥연주를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연주가는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처하면서도 자신이 의도한 멜로디로 자신의 음악을 실시간으로 만들어갑니다. 


이것은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 현황과 너무 비슷합니다. 

우리 모두 예측할 수 없는 무대에 올라서 어떻게 날아들어올 지 모를 낯선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내 최선의 연주를 해야 하는 재즈연주자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익숙한 것은 오히려 재즈연주가보다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스타일에 

더 가깝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악보 그대로, 그저 지휘자가 시키는 데로 연주하는 클래식 연주가.

앞으로 내가 어떤 연주를 해야 할지 악보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다른 연주가들과 어떻게 합을 맞춰야 할지

지휘자가 다 이끌어 줍니다.  지금 상황은 확실하고 안정되어 있는 루틴대로 움직일 뿐이고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산업화 시대를 지배했던 사고와 행동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요?  세상은 악보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그런 세상에 당황한 지휘자는

도망가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의미없는 악보만 하염없이 보며 무대에 덩그러니 남겨진 꼴이 된 것입니다.


클래식 연주자에게 악보가 없이 무엇을 연주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은 패닉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재즈 연주자에게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이 오히려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것으로

흔쾌히 그 순간을 즐깁니다.


따라서 '재즈' 라는 메타포를 활용해서 세상을 보게 되면 비로소 선명하게 '본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하나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클래식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통하는 룰과 재즈 무대에서 통하는 룰은 완전히 다릅니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철로를 따라 가는 것과 배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이제 '재즈'라는 프레임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재즈연주가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DNA 를 수혈받아 이 세상의 무대에 서야 합니다.

새로운 판에 맞는 룰과 원칙을 찾고, 만약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마침내 


"불확실하기에 나에게 아직 '기회'가 있고 불안정하기에 나는 더 '성장'할 수 있다."


라는 마인드셋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